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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종군 사진기자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 '리(Lee, 2024)'가 제작되어 올 9월 27일 미국내 개봉된다. 주연은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감독은 촬영감독 출신 엘렌 쿠라스(Ellen Kuras)다.  

 

리 밀러는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피카소의 모델이자 만 레이의 뮤즈였다. 1945년 독일이 패망하자 뮌헨의 히틀러 자택에 들어가 옷과 군화를 벗고 자화상을 촬영해 화제가 됐다. 

 

뉴저지 시더그로브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엘렌 쿠라스는 어릴 적 청력을 거의 상실했다. 브라운대에서 인류학과 기호학을 전공한 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뉴욕에서 영화제작을 공부했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스파이크 리(Spike Lee), 샘 맨데스(Sam Mendes), 짐 자무쉬(Jim Jarmusch), 레베카 밀러(Rebecca Miller),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등 감독의 영화를 촬영했다. 

 

'LEE'에는 마리온 코티야르(Marion Cotillard)를 비롯, Andrea Riseborough, Andy Samberg, Noémie Merlant, Josh O'Connor, Alexander Skarsgård가 출연한다. 이 영화는 올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초청됐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초기 여성사진작가전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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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Ray, Lee Miller in Glass Tears, 1932/ Lee Miller in steel helmet specially designed for using a camera, Normandy, France 1944

 

#3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 

모델, 만 레이 뮤즈에서 종군기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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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iller, Liberated prisoners in bunks, Dachau prison camp, Germany 1945

 

리 밀러는 뉴욕주 포킵시(Poughkeepsie)에서 태어났다. 기계공학자이자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는 코닥 브라우니 카메라로 딸 리를 모델로 촬영하면서 사진술을 가르쳐주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평온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리는 7살 때 브루클린에서 친지에 의해 성폭행을 당해 임질에 걸렸다. 이 트라우마로 말년에 그녀의 사진엔 색채가 가미된 렌즈로 찍은 것으로 분석된다.  

 

반항의 10대 소녀 리 밀러는 사립학교에서 번번이 퇴학당했다. 연극에 관심을 갖고 18세에는 파리로 갔다. 밀러는 도착 후 "파리는 내 것, 이곳이 나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연극 조명, 의상, 디자인을 1년간 배운 후 돌아와 포킵시 바싸대학교의 실험연극부에서 활동했다. 그후엔 맨해튼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드로잉과 회화를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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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Hoyningen-Huene, Lee Miller for Vogue, 1931

 

19살 어느날 맨해튼을 거닐던 중 '보그'지의 커버로 발탁되어 모델로 일하기 시작했다. '모던 걸(Modern Girl)'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밀러는 에드워드 스타이켄, 아돌드 켄티, 니콜라스 머레이 등 당시 패션 사진가들의 인기 모델이었다. 스타이켄은 훤칠한 키, 가느다란 금발, 강인한 옆모습, 우아한 스타일 등을 갖춘 리 밀러를 1920년대의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했으며, 초현실주의 사진가 만 레이(Man Ray)에게 추천서도 써주었다. 하지만, 스타이켄은 밀러의 사진을 동의 없이 코텍스 생리대 광고에 써서 패션모델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1929년 밀러는 그림에 염증을 느끼고, 사진작가로 새출발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  그녀는 파리 나이트 클럽에서 처음 만난 만 레이에게 "내 이름은 리 밀러, 당신의 새 학생이예요"라고 대화를 시작했다. 만 레이는 학생을 받지 않으며, 자신은 휴가를 간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밀러는 나도 당신과 함께 휴가를 가겠다고 하며 만 레이의 견습생이자 연인이 된다. 당시 만 레이는 몽파르나스의 뮤즈였던 '키키'와 동거하던 중이었다. 밀러를 만나면서 레이는 키키와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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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iller and Man Ray, ?  / Lee Miller and Pablo Picasso, 1944

 

리 밀러는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판 '보그'지의 모델이자 사진가로 활동했다. 장 콕토, 파블로 피카소, 폴 엘루아르 등 만 레이의 친구들 초상을 촬영했으며, 콕토의 전위영화 '시인의 피(Le sang d'un poète, 1931)'에 출연했다. 

 

어느날 암실에서 일하던 중 쥐가 발을 지나치자 실수로 조명을 키면서 솔라리제이션(solarization: 과도한 노출로 현상 후 명암이 반전되는 현상) 기법을 발견하게 된다. 솔라리제이션은 초현실주의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였다. 밀러와 레이는 공동 작업의 명의를 두고 논쟁을 벌였으며, 싸움 끝에 레이는 밀러의 사진에서 목을 면도날로 긋기에 이른다.  

 

1932년 밀러는 만 레이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왔다. 동생 에릭과 라디오시티뮤직홀 인근 아파트에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차렸고, 동생 에릭을 암실 조수로 기용했다. 엘리자베스 아덴, 헬레나 루빈스타인, 삭스 1애브뉴 등을 고객으로 돈을 벌었다. 그래 브루클린뮤지엄에서 라즐로 모홀리-나지, 세실 비튼, 마가렛  버크-화이트, 에드워드 웨스턴, 만 레이 등이 참가하는 국제 사진전에 초대됐다. 이듬해엔 개인전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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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iller, From the top of the Great Pyramid, 1938, Portrait of Space, 1937

 

1934년엔 스튜디오를 닫고, 20세 연상의 이집트의 거부(아지즈 엘루이 베이)와 결혼, 카이로에서 삶을 시작했다. 사막의 풍경과 피라미드로 매료되었다가 차츰 염증을 느낀 밀러는 4년 후 파리로 가서 만 레이와 화해하고, 영국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시인이며, 아트 콜렉터 롤란드 펜로즈(Roland Penrose)를 만나 유럽을 여행했다. 

 

펜로즈와 함께 런던으로 이주한 리 밀러는 영국판 '보그'지의 패션사진작가로 일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달하자 종군 기자로 나치 독일의 런던 폭격(블리츠/ The Blitz/번개)장면, 소방 마스크를 쓴 시민들, 폐허가 된 랜드마크 건물, 군대 트럭에 모인 매춘부 등을 포착했다. 

 

1942년 10월 세기의 여성 사진작가 둘이 만났다. 리 밀러는 히틀러의 소련 침공을 취재한 'LIFE'지의 종군 특파원 마가렛 버크-화이트(Margaret Bourke-White)를 촬영하기 위해 노스햄턴셔로 갔다. 촬영을 계기로 친구가 되어 마가렛은 리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1944년엔 미 육군 제 83보병에 입대해 파리 해방, 독일 다하우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등을 취재했다. 나치 독일의 첫 강제수용소인 다하우는 20여만명이 수감됐으며, 이중 1/3이 유대인이었다. 악명높은 부헨발트 수용소는 수감자가 11만여명에 달했으며, 생체실험과 독가스 살해도 행해졌다. 밀러는 두 수용소의 사진을 찍은 후 진흙 투성이의 장화와 옷을 벗고 히틀러의 욕조로 들어가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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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iller, Margaret Bourke-White, Northamptonshire, England 1942/ David Scherman, Lee Miller baths in a tub in Adolf Hitler's home, Munich, Germany, 1945

 

 

전쟁이 끝나자 밀러는 강제수용소 현장의 충격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음주벽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후에는 유명인사 초상사진을 촬영하면서 1947년 베이와 이혼하고, 펜로즈와 결혼해 바로 아들을 낳았다. 재혼 후 밀러는 남편과 예술계의 거장들을 종종 접대했다. 1953년 '보그'지에 MoMA 관장 알프레드 J. 바가 자신의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 아티스트 막스 에른스트가 나팔꽃을 심는 모습을 찍어 기고했다. MoMA 사진부의 큐레이터가 된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1955년 특별전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에 밀러의 작품을 걸었다. 

 

밀러는 1940-50년대 영국의 정보국으로부터 소련의 스파이로 조사받았다. 말년의 리 밀러는 '초현실주의 미식가들의 요리'를 통해 우울증을 벗어나려고 했다. 이스트서섹스의 팔리 하우스(Farley House)에서 피카소,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헨리 무어, 장 뒤뷔페, 도로시아 태닝, 호안 미로 등 친구들을 접대하며 익힌 세계 음식을 요리책으로 준비했지만, 출간되지는 않았다. 

 

아들 안소니(Anthony Penrose)에게 코닥 카메라를 주어 사진술을 가르쳤고, 안소니는 14살 때 집을 방문한 피카소 사진을 찍었다. 1962년 엄마와 아들은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촬영 여행을 갔고, 밀러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자이스 콘택스(Zeiss Contx) 카메라를 아들에게 맡기고 귀국했다. 당시 밀러는 아들에게 "카메라를 떨어트리면, 너의 목을 부러트리겠어!"라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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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iller, Dead SS Prison Guard Floating in Canal, Dachau, Germany, 1945/ The Burgermeister's Daughter in Town Hall, 1945 

 

1966년 남편 롤란드 펜로즈가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편, 밀러는 우울증과 알콜중독에 빠졌으며, 남편과 아들 안소니(Antony Penrose), 오랜 친구들과도 지속적으로 말다툼을 했다. 자신의 사진작업에 대해서 거의 침묵해온 밀러는 1977년 70살에 암으로 사망했다. 임종 전 즈음해서 아들과 화해했고, 아들은 다락방에서 엄마가 보관한 6만여장의 사진과 네거티브를 발견했다. 그리고, 사진작가가 된 아들은 리 밀러 보관소를 설립했으며, 어머니의 전기 'The Lives of Lee Miller'(1988)를 출간했다. 

 

리 밀러의 사진 작업은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구찌 디자이너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 벨기에 디자이너 앤 드뮬리스터(Ann Demeulemeester), 영국의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에게 영향을 주었다. 

 

2014년 런던의 초상화 갤러리에서는 'Lee Miller: Portraits'을 열었다. 2016년 플로리다 포드로더데일 뮤지엄에서는 '“The Indestructible Lee Miller'전이 열렸다. https://www.leemiller.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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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dali.org/exhibit/photographer-lee-miller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살바도르달리뮤지엄(Dali Museum)에서는 리 밀러 회고전 'The Woman Who Broke Boundaries: Photographer Lee Miller'(July 3, 2021 – January 2, 2022)이 열린다. 이 전시에선 리 밀러의 작품 13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July 2–October 3, 2021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October 31, 2021–January 30, 2022

https://www.metmuseum.org

 

*메트뮤지엄 초기 여성 사진작가전 <1> 마가렛 버크-화이트

*메트뮤지엄 초기 여성 사진작가전 <2> 레니 리펜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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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8.11 12:42
    사진작가 리 밀러의 생애를 잘 읽었습니다. 종군기자와 모델로 활약을했고, 특히 피카소의 모델로 일했고 피카소와 둘이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두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지적이고, 매력이 넘쳐보여서 둘이 찍은 사진 자체가 작품같은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자 Munich에 있는 히틀러의 자택의 목욕탕에 군화와 옷을 벗어놓고 욕조에 들어가서 있는 사진은 전쟁이 끝나고 그 상흔을 다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을 구가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7살에 강간을 당했고, 임질 우을증 등등을 겪고 그 못된 것들을 다 극복하고 사진작가로서의 생애를 투철하게 살다 간 리 밀러가 우러러 보입니다.
    -Ea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