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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파울라 모더존-베커 미 미술관 첫 회고전 

'Paula Modersohn-Becker: Ich bin Ich /I Am Me'

 

June 6, 2024-Sept. 9, 2024 @Neue Galerie, NY

Oct. 12, 2024-Jan 12, 2025 @Chicago Art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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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Girl Blowing a Flute in the Birch Forest, 1905. Paula Modersohn-Becker Museum, Bremen

 

맨해튼의 독일-오스트리아 전문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에서 2024년 6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 독일 출신 표현주의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odersohn-Becker, 1876–1907) 회고전 '나는 나(Paula Modersohn-Becker: Ich bin Ich / I Am Me)'를 연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서양 미술사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렸으며, 임신에 촛점을 맞추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와 우정을 나누다가 31세에 산후 색전증으로 요절했다. 미 최초의 모더존-베커 회고전으로 노이에 갤러리 전시 후 2024년 10월 12일부터 2025년 1월 12일까지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로 순회 전시된다. https://www.neuegaleri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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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Ich bin Ich /I Am Me', June 6, 2024-Sept. 9, 2024 @Neue Galerie, NY

 

 

Paula Modersohn-Becker: The First Modern Woman Artist 

최초의 누드 자화상 그린 여성화가, 시인 릴케와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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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Self-Portrait on the sixth wedding anniversary, 1906/ Diane Radycki, Paula Modersohn-Becker: The First Modern Woman Artist, 2013

 

세계 미술사에서 여성들의 누드 회화나 조각은 수없이 많이 제작되어왔다. 대부분 남성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반면, 여성 미술가들은 누드 작업을 할 기회가 좀체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누드를 그린 작가들이 있었다. 그 첫번째로 알려진 인물이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 1876-1907)이다. 베커는 쇼킹하게도 임신한 누드 자화상을 그렸다. 

 

다이앤 래디키(Diane Radycki)는 모더존-베커의 전기 'Paula Modersohn-Becker: The First Modern Woman Artist'(2013)에서 베커를 "최초의 모더니스트 여성화가"라 평가했다. 31세에 요절한 화가 베커는 또한 표현주의의 거장으로 재조명되는 중이다. 최근 프랑크푸르트의 션 쿤스탈(Schirn Kunsthalle) 갤러리에선 모더존-베커의 작품 120여점을 소개하는 회고전 'Paula Modersohn-Becker'(10/8/2021-2/6/2022)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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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Children with goldfish bowl, 1907/ Young Girl Holding Yellow Flowers in a Glass, 1902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1876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철도 엔지니어 아버지와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 사이 7자녀 중 세번째로 태어났다. 12살 때 브레멘으로 이주해 자랐으며, 런던의 친지를 방문했다가 세인트존스우드 예술학교에서 회화교습을 받았다. 1899년 초 친구 클라라 베스토프(Clara Westhoff 1878-1954)가 파리 유학을 떠나자 베커도 그해 말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콜라로씨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00년 베커와 베스토프는 독일의 예술가 집성촌 보르프스베데(Worpswede)에서 살며 작업했다. 이즈음 베커와 베스토프는 오스트리아 출신 청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를 만났다. 릴케는 21세(1897년)에 니체의 애인이었던 16세 연상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é)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었다. 훗날 프로이트는 루 살로메가 "릴케의 뮤즈이자 섬세한 어머니였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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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Portrait of Rainer Maria Rilke, 1906/ The Sculptor Clara Rilke-Westhoff, 1905 

 

여하튼 루 살로메로부터 벗어난 시인 릴케는 24세 동갑내기 베커의 성격과 재능에 반했지만, 이미 베커는 풍경화가 오토 모더존과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이에 릴케는 이듬해 베커의 친구 클라라 베스토프와 결혼, 베커와도 친구가 된다. 훗날 베커는 릴케의 초상화를 그려주었고, 릴케는 베커 사망 후 그녀를 위한 장송시를 썼다. 

 

릴케는 1902년 조각가 로댕(Auguste Rene Rodin, 1840-1917)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부인 베스토프의 스승이었던 오귀스트 로댕의 시골집으로 찾아갔다. 릴케는 26세, 로댕은 61세였다. 예민한 오스트리아 시인 릴케와 괴퍅한 프랑스 거장 로댕은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반해 릴케에게 4개월간 머무르게 해주었다. 1905년 릴케는 다시 로댕을 방문했고, 그의 풀타임 비서로 9개월간 함께 살고 일했다. 어느날 로댕은 자신의 허락없이 지인에게 편지를 쓴 릴케에 분노해서 릴케를 해고했다. 

 

릴케는 거장 로댕으로부터 '통찰(inseeing)의 기술'을 배웠다. 로댕은 릴케에게 늘 "작업하라, 항상 작업하라"고 말해주었다. 릴케는 이후 자신의 시를 한점의 조각처럼 사고하게 된다. 릴케는 로댕과의 생활을 토대로 논문과 전기를 집필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는 곧 회복됐다. 1908년 릴케는 파리의 버려진 맨션을 학교 겸 코뮨으로 개조한 화가 마티스를 비롯, 시인 장 콕토,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등 예술가들과 살면서 로댕과 릴케는 화해했다. 그 버려진 건물이 지금의 로댕 뮤지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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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비서였던 시인 릴케가 쓴 두권의 책과 둘의 관계를 다룬 레이첼 코베트의 책 표지.

 

파울라 모더존-베커는1898년 예술가 코뮨 보르프스베데를 창립한 풍경화가 프리츠 마켄젠(Fritz Mackensen)에게 그림을 배우며 시골 농부와 풍경화를 그렸다. 수차례 파리를 여행하면서 세잔, 반 고흐, 고갱, 밀레, 그리고 마티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00년 4월 파리 박람회에서 화가 오터 모더존(Otto Modersohn)을 만났는데, 그즈음 모더존의 부인이 사망한다. 이듬해 모더존과 결혼해 그의 두살박이 딸 엘스베스를 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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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모더손, 폴라 모더존-베커와 엘스베스 모더손, 1904. Photo: Paula Modersohn Becker Stif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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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 Becker, Reclining Mother and Child II, 1906 

 

서른살이던 1906년 봄 베커는 파리에서 오토 모더존과의 결혼 6주년을 기념한 자화상을 그렸다. 임신한 모습의 누드 자화상이었다. 왼손은 흰천을 잡고, 오른 손은 배를 잡고 있는 포즈다. 실제는 임신한 상태는 아니었다. 베커는 곧 임신해 이듬해 11월 딸 마틸데을 낳았지만, 출산 19일 후 산후 색전증(postpartum embolism)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 파울라는 병원 침대에서 내려가 몇걸음을 걸은 후 아기를 앉으려다가 다리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그림은 베커의 엄마가 소유하고 있다가 현재는 1927년 브레멘에 오픈한 파울라 모더존-베커 뮤지엄(Paula Modersohn-Becker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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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모델을 쓰려면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자신을 모델로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1908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파울라 모더존-베커에게 헌사하는 시 '친구를 위한 장송곡(Requiem for a Friend)'를 썼다. 1927년 브레멘의 모더존-베커가 살던 집은 미술관으로 오픈했다. 모더존-베커는 31년이란 짧은 삶 속에서 734점을 남겼다. 베커의 누드화들은 평생 공개되지 않았다가 1907년 11월 사망 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딸 마틸데 모더존(1907-1998)은 파울라 모더존-베커 재단을 설립해 엄마의 삶과 작품을 홍보했다. 모더존-베커는 생전에 일기를 꾸준히 쓰고,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1920년대 그녀의 편지가 독일어로 출판되었다. 

 

이 뮤지엄은 파리에서 파울라 모더존-베커를 만났던 사업가이자 미술 후원가 루드비히 로젤리우스(Ludwig Roselius)가 조각가 겸 건축가 베른하르트 호에트거(Bernhard Hoetger)에게 의뢰해 벽돌표현주의 양식으로 설계됐다. 최초의 여성화가 전용 미술관인 파울라 모더존-베커 뮤지엄은 1935년 나치의 공격을 받았고, 이듬해엔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서 '퇴폐미술'로 비판받았다. 이에 창립자 로젤리우스는 자살까지 생각했다가 뮤지엄을 보호하는 댓가로 자신의 재산을 항공회사에 바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미국 화가 제니 홀저(Jenny Holzer)가 베커에게 헌사하는 디지털 네온 조명 작품 "Mother and Child'를 뮤지엄 계단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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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Self-portrait with hat and veil, 1906-07/ 베커와 릴케의 관계를 다룬 에릭 토저슨의 책 'Dear Friend' 표지.

 

삶을 이해해야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인생은 축제처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처럼 하루하루 당신에게 일어나도록 하세요

나아갈 때마다 모든 슬픔에 의해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처럼

 

아이들은 꽃을 꺾어서 저장하지 않아요

그들이 좋아했던 갇혀진 머리카락으로부터

부드럽게 풀려서 새날이 오면 

사랑하는 젊은 이에게 손을 건내줍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Du musst das Leben nicht verst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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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Modersohn-Becker: Ich bin Ich /I Am Me', June 6, 2024-Sept. 9, 2024 @Neue Galerie,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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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2.15 17:52
    강인한 여성<2>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성화가 모더존 베커의 일생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강인함보다는 용감무쌍함을 느꼈습니다. 엇듯 그림이 고갱과 피카소의 여인과 비슷함이 있는 것같았습니다. 섬세한 구석보다는 굵고 둥글고 만지면 푹신푹신한 느낌을 갖겠다 싶습니다. 누드화 자화상을 비롯해서 짧은 생애에 750여점이란 회화를 그린 점이 그녀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