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영혜/빨간 등대
2024.07.06 14:06

(718) 홍영혜: 뉴욕의 염소 이야기 셋

조회 수 194 댓글 1

빨간 등대 (67) Goatham City 

 

뉴욕의 염소 이야기 셋

 

Untitled_Artwork (20).jpg

Sue Cho, “Three Goats with Landscape”, June 2024, Digital Painting

 

오늘은 뉴욕에서 만난 염소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그전까지는 염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지 아마도 부정적 편견이 더 컸던 것 같다. 성경에 최후의 심판 때 (마25:31-46) 양은 선한 것으로 염소는 악한 것으로 가르는 비유나 그리스 신화에서 반인반수 (하반신이 염소)인 사티로스(Satyr)의 음탕한 이미지 등으로 인해 염소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호에 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 “La Cabra”(스페인어로 염소)의 이름을 왜 염소라고 지었을까? 라는 나의 단순한 궁금증이 뉴욕서 흥미로운 염소들과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 염소를 “smart, curious, gentle, independent, and social, who are full of character and display unique personality”라고 말했듯이 신화 속이 아니라 실제로 만나 염소들은 영리하고, 호기심 많고, 유순하고 사람들과도 잘 소통하는 흥미로운 동물인 것 같다. 

 

 

염소 이야기 하나: 커피와 염소 'La Cabra'

 

20230705_185255.jpg

La Cabra, East Village(left & center), La Cabra, Soho (right)

 

La Cabra는 이스트 빌리지와 소호에 있는 덴마크 베이커리 & 카페 이름이다. 이곳의 카다멈 빵(Cardamom Bun)은 한 번 맛을 보면,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든다. 스웨덴에서 유래된 카다멈 번은 씨앗에서 추출한 인도의 향료인 카다멈을 넣어 특유한 맛이 난다. 카다멈은 말로 설명한긴 어렵지만 시나몬, 너트맥, 클로브처럼 “earthy”(구수한 흙맛?)한 맛이 있다. 먹어 보면 확실히 기억되는 따뜻한 자연의 맛이다. 먹고 난 후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뒷맛이 있다. 반죽을 맵시 있게 땋아서 보기도 좋고,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워, 식감도 쫄깃하다. 한국서 온 조카가 이곳을 알려 준 다음부터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간다.

 

이스트 빌리지 1호점(La Cabra Bakery, 152 2nd Ave)이 직접 빵을 굽기 때문에 더 신선하고 페이스트리 종류도 많은데 집에서 가까운 소호점(284 Lafayette St.) 으로 걸어간다. La Cabra는 가게 밖까지 줄이 긴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사람들이 커피와 카다멈 번을 주문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카다멈 번 4개나 주문할 때는 초조해진다. 다행히 내 차례까지 카다멈 번이 남아 있어 달랑 한 개를 산다. 당을 조심해야 해서 유혹을 뿌리친다. 

 

카페가 심플한 스칸디나비아 분위기로 마음에 들지만 늘 붐비기 때문에 창턱에 걸터앉던지 벽에 설치한 선반에 커피를 놓고 대충 뭉개야 한다. 혼자일 때는 집에 와서 차를 끓여 카다멈 번을 먹는다. 시간이 맞으면 (정오에서 2시 사이) 오빠가 알려준 “콩(Kong)” 앱을 다운받아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면서 먹으면 더없이 행복하다. 반 잘라서 남편에게 주려고 했는데, 점점 야금야금 사라져 버린다. 아무래도 다음엔 두 개를 사가지고 와야겠다.

 

이 베이커리 이름이 왜 La Cabra, 염소일까 늘 궁금했지만, 항상 줄이 길고 바빠서 점원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한가하게 그런 질문을 할 틈이 없었다. 나의 궁금증은 뜻하지 않은 우연한 곳에서 풀리게 되었다. 황보름 작가의 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다가 “커피와 염소”라는 챕터를 보자 나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전설에 따르면 인류가 커피를 발견하게 된 건 염소 때문이라고 했다. 염소가 작고 동그랗고 빨간 열매만 먹었다 하면 지치지도 않고 날뛰는 걸 보고, 염소지기가 커피 열매의 존재와 그 효과를 처음 알았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냥 고트빈이라고 상호를 정했지. 이것 저것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pp.64-65)  

나의 궁금증이 시원스레 해소된 뒤론 뉴욕의 염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https://lacabra.com

 

 

염소 이야기 둘: 센트럴파크 티쉬 어린이 동물원 Tisch Children's Zoo, Central Park

 

20240705_000921.jpg

 

센트럴 파크는 많이 둘러보았는데, 파크 안에 있는 동물원(Central Park Zoo)은 아직 남겨두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손주들과 함께 가려고 기다렸었다. 왠지 아이들 없이 가면 맹숭맹숭할 것 같아서.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4살 반 된 손녀를 돌보게 되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파크 동물원에 데리고 갔다. 사실 이 나이에는 동네 놀이터만 가도 잘 놀아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는데, 이참에 나도 동물원 구경 한번 해보자는 마음도 한몫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떨쳐야 할 관문들이 많다. 망고를 크고 길게 잘라서 먹음직스럽게 파는 카트를 보고 사달라고 하는데, 위생적일까 조심스러워, 가져간 귤을 대신 주었는데 손녀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어쩔 수 없었다. 나 같아도 망고가 먹고 싶을 것 같다. 풍선까지 사주지 않으면 할머니 인기는 완전히 바닥날 것 같아 유니콘 풍선 아트를 손에 들려주었다. 햇빛을 가리라고 분홍색 곰돌이 모자를 사주었더니 그제야 함박웃음이 되었다. 

 

 

20240704_200637.jpg

 

펭귄, 바다쇠오리, 눈표범, 붉은 판다, 물개 등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로운 동물들을 보았다. 손녀를 간수하고 사진을 찍어주느라 동물원에는 집중할 수 없었다. 다음번에 아이 없이 조용히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티켓을 사면 센트럴파크 돌물원과 조금 북쪽으로 게이트가 따로 있는 티쉬 어린이 동물원(Tisch Children’s Zoo) 두 곳을 볼 수 있다. 문닫기 전에 서둘러 아이들 동물원 쪽으로 가다 때마침 5시여서 델라코테 시계(Delacorte Clock/ George Delacorte Musical Clock)에서 뮤직쇼를 한다 두 마리의 원숭이가 방망이로 종을 내리치니 아래에 동물 악대들이 돌면서 음악이 나온다. 펭귄, 캥거루, 곰, 코끼리, 히포, 그리고 염소? 염소가 거기 있어 조금은 의아했다.

 

그리고 티쉬 어린이 동물원 들어가는 입구(East 65th St)에도 중앙에 브론즈로 아이와 함께 두 마리의 염소 조각이 있다. 아이들에게 염소가 이렇게 인기 있는 동물인지 몰랐다. 벼랑에도 염소 조각이 내려다보고 여긴 온통 염소 천국이다. 거의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동물에게 음식을 주거나 페팅하는 시간은 지나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막사 안에 쉬고 있었다. 그런데 염소 울타리 주변엔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염소가 사람들에게 다가와 아이가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고 울타리 틈에 머리를 내밀고 빼꼼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녀도 그 틈에 조심스레 염소를 쓰다듬어 보았다. https://centralparkzoo.com 

 

 

염소 이야기 셋: 리버사이드 파크 Goatham Initiative, Riverside Park 

 

20240705_021226.jpg

Riverside Park, 2023 (photo by Seon Mi Kim)

 

전에 리버사이드 파크(Riverside Park) 근처에 살 때, 스텝과 자원봉사자들이 침입종 (Invasives species)을 통제하려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것을 보았다. 2018년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염소들의 도움으로 포이즌 아이비나 포슬린 베리, 쑥 같은 잡초들이 퍼지는 것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한다. 염소들을 하루에 대략 몸무게의 1/3, 25파운드 정도 되는 잡초를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하기 힘든 가파른 곳도 잘 올라가고, 포이즌 아이비도 염소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어 화학적 스프레이 쓰지 않고 환경친화적으로 잡초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염소의 배설물이 비료로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그야말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다. 리버사이드파크의 119th 에서 122nd  Forever Wild 주변은 4번의 여름에 걸쳐 염소들이 잡초를 싹 다 정리했다고 한다.

 

 

goats.jpg

 

울타리에 붙인 설명서에서 보듯 염소의 이름과 스토리까지 자상히 기록하고 있다. 시즌 끝에는 'G.O.A.T(Greatest of All Time) of the year'상도 준다고 한다. 염소가 인간이 부리고 착취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공생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이 염소들은 업스테이트 뉴욕 라인벡(Reinbeck, NY)의 그린 고트(Green Goats) 농장에서 온다고 한다.

 

올해는 좀 더 취약하고 많이 방치되었던 West 143rd St. 지역으로 정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리버사이드 파크 당국이 발표했다. 7월 19일 축하연으로 시작하여 9월까지 7마리들의 염소들이 잡초를 먹는다고 한다. 이 염소들에게 환호를 보낸다. 리버사이드파크 웹사이트에서 Goatham kick off celebration (시작 축하파티) 정보와 2024년 7마리의 일꾼들을 만나볼수 있다. 

https://riversideparknyc.org/goatham

 

 

goat.jpg

Sue Cho, “Farmyard Scene with Goats”, June 2024, Digital Painting

 

PS : 뉴욕의 별칭 중 우리가 잘 아는 Big Apple 말고, Gotham City(고담 시티)도 있다. Gotham이 중세 영어로 염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뉴욕시가 고담 시티로 불리우는데는 설이 구구하다.뉴욕에 염소를 많이 키워서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1807년 뉴욕의 문화와 정치를 풍자하는 잡지 'Salmagundi'에서 Gotham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조롱하는 톤으로 뉴욕시를 일컫느데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Batman의 활동무대가 고담시티인데 이는 당시 뉴욕시를 모티브로 했다. 아무튼 뉴욕은 염소와 인연이 깊다.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
  • 김정화 2024.07.12 15:34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 처럼, 평화로운 수채화를 보는 것 처럼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염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구요 상상을 돕는 그림과 그것을 보충해주는 사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