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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24.07.22 20:05

(719) 허병렬: 아름다운 손 글씨

조회 수 165 댓글 1

은총의 교실 (101) 글 쓰기와 글 치기 

아름다운 손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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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배우는 바른 손글씨/ 우리들의 예쁜 손글씨 : 일기체 (김정은, 김지향)

 

 

언어도 진화한다. ‘집밥’이란 말이 바깥에서 사서 먹는 음식에 맞서는 말로 사용되는 것도 하나의 예이다. 요즈음 ‘손글씨’라는 말도 자주 듣게 된다. 그럼 몸의 다른 부위로 쓰는 글씨와 구별하는가. 그게 아니고 이는 자판글씨와 구별하는 말이다. 손글씨와 자판글씨는 제각기 용도의 차이를 제공한다.

 

손글씨의 사용 빈도가 적어지면서 여기 따르던 말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썩 잘 쓴 글씨를 가리키는 명필, 우아한 글씨체, 개성미 넘치는 필체...등의 말과는 멀어졌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글씨체는 품격이라고 손글씨의 향상을 바라던 노력이 필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사랑의 편지, 일기, 메모까지도 자판글씨를 이용한다면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자판글씨에 마음을 싣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자판글씨에 장점이 없는가. 분명히 있다. 공문, 책, 규칙, 알림...등 그 내용에 마음을 실을 필요가 없이, 상대방에게 분명히 내용을 알려서 이해를 이끌어내는 글들은 자판글씨가 제격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손글씨와 자판글씨를 구별해서 사용함은 나 자신이 판단할 일이다.

 

뉴욕타임스가 알리는 반가운 소식은 ‘글씨 쓰는 것을 손으로 배워 깨우친 어린이들이, 읽기도 빨리 배울 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정보를 유지하는 능력이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이다. 워싱턴대 버지니아 버닝거 박사도 필기체를 쓴 어린이들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많은 단어를 더 빠른 속도로 생각하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심리학자들도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노트 필기를 하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배운 내용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해 앞선 연구 결과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바로 손글씨를 배우면 더 똑똑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공부한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방법은 많이 읽고, 그것을 기억하기 편하도록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습관화되면 학습의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우수하지만 용량이 많아지면 믿기 어려워서, 알게 된 내용을 기록하게 된다. 그 이후는 기록하는 방법에 따라, 활용하는 빈도에 따라 학식이 생활화한다.

 

예전 학생들은 손글씨를 열심히 단련하였다. 필순에 따라, 바르게, 빨리, 예쁘게, 개성미 있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글씨를 빨리, 빠르게, 예쁘게 쓸 수 있음을 자랑하였고, 칭찬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경향을 찾을 수 없다. 자판글씨 일색이며, 손글씨 자체에 대한 관심을 별로 볼 수 없는 세태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예쁜, 멋있는 손글씨를 보면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손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손글씨 쓰는 일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쓰는 습관을 기른다. 어린 학생이라도 자꾸 쓰면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의 글씨체를 길러가게 된다. 우선 그림일기에 몇 마디를 써넣다가, 일기의 글 길이를 늘려가는 것도 좋고,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심부름할 때 메모하는 버릇도 길러주고 싶다.

 

손글씨를 자랑할 수 있는 행사도 생각할 수 있다. 손글씨 전시회, 받아쓰기 대회, 붓글씨 쓰기 모임, 제시된 그림에 설명달기...등 재미있는 행사를 열어 손글씨를 자랑하고, 재주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손글씨도 다른 재주처럼 성장한다. 사람의 개성이 생김새, 마음쓰기, 목소리, 말의 내용...등 여러모로 나타나는데 손글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손글씨를 즐기는 동안에 그것이 자신을 상징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손글씨의 아름다움이 심정의 고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느껴짐도 그 까닭이다. 터무니없는 나의 황당한 꿈은 지금도 개성적인 손글씨로 쓴 ‘사랑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다.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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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4.07.27 21:51
    허병렬 선생님의 아름다운 손글씨를 읽고 동감을 했습니다. 손글씨가 뒤안으로 가파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내면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에 손글씨는 뒷전으로 밀립니다. 생일 카드나 성탄절 카드도 카톡으로 보내기 일쑤여서, 손글씨를 쓸 기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내 방 복도벽에는 내가 가보로 여기는 엄마가 손글씨로 쓴 문안편지를 액자에 넣어서 걸려있습니다. 남편도 애들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이 액자를 나는 매일매일 보면서 엄마의 체취를 느낍니다. 썩 잘 쓴 손글씨는 아니지만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그리움을 달래줍니다.
    손글씨의 귀중함을 2세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알릴까 고민을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