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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4.08.04 17:28

(721) 이수임: 토종 입맛, 퓨전 입맛

조회 수 171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48) 린다 이야기 

 

토종 입맛, 퓨전 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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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 Im Lee, Dance, dance, 2024, digital painting

 

몹시 흔들리는 크루즈에서 뱃멀미로 난리 치는 와중에 그동안 여행 중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잘 통하는 부부를 만났다. 외국인 남편을 둔 나보다 나이 많은 한국분, 린다씨와 친해졌다. 

 

내 남편은 한인을 만나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어울리기를 꺼린다. 어쩐 일인지 이번엔 달랐다. 파도가 하도 쳐서 남편의 머리통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오랜 바닷길에 지쳤는지? 남편은 매일 저녁을 같이 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크루즈 여행에서 어쩌다 만나는 한국 여자들의 남편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거듭난 여자들이다. 상대의 힘듦에 공감하고 격려하며 ​​​​​웃음으로 넘길 줄 안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스프링이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모든 돌멩이를 스칠 때마다 삐걱거린다."

유머 감각이 없으면 모든 일에 삐걱거린다는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의 말처럼, 나이 들수록 개그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 

 

린다 부부와 있으면 있을수록 더 함께하고 싶었다. 그녀를 찾아 배 안에서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의아해할 정도로 린다는 개그에 뛰어난 분이다. 대화 중간중간의 표정과 손놀림은 마치 타고난 연극배우가 아닌가 할 정도다. 내 남편은 점잔 떨다가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 폭소하곤 했다. 그녀는 아는 것도 많고 솔직했다. 누구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냐는 듯 당당했다. 

 

한인들이 오랜 기간 크루즈를 타면 한식을 먹지 못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민 생활 자리 잡느라 닥치는 대로 끼니를 때우곤 했던 시절이 왕왕 있어서 한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태원에 살다 와서 그런가? 외국인들과도 거리낌도 없고 한식을 찾지 않네.”

남편은 내가 이태원에서 온 여자라서 그런다지만, 글쎄 아마 난 퓨전 인간인 것 같다.

 

신기하게 평생을 미국인과 산 린다는 한식을 찾았다. 랍스터, 스시, 사시미 등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는데도 야채로 김치 비슷하게 만들어 먹었다. 크루즈 뷔페에는 온갖 양념이 다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달라면 준다. 그녀가 얼버무려 만든 음식은 꽤나 맛있다. 

 

“아예 린다가 우리 캐빈에 식당을 차렸다니까.”

 

린다 남편이 옆에서 한식 비슷하게 만드는 린다를 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도 된장찌개 안에 든 감자, 호박, 두부를 건져 먹는 것을 좋아한단다. 오히려 외국인과 사는 한인들이 나이 들수록 고국을 그리워하며 더욱 더 한식을 찾는 듯하다. 내가 고생 할 때 먹은 감자가 제일 맛있어서 뷔페에서 끼니때마다 감자를 먹듯이.

 

나는 가늘던 허리가 부풀어서 크루즈에서 내렸다. 과연 내 허리가 크루즈 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크루즈를 즐기지만, 뱃살 늘어나는 것 때문에 타기가 머뭇거려진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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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4.08.08 15:18
    오래간만에 이수임씨의 글을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토종 입맛 퓨젼 입맛을 남편과 린다씨란 인물을 등장해서 콕 집어 쓰셨네요.
    크루즈 여행을 한 느낌입니다. 몇번 크루즈 여행을 했지만 이수임씨만큼 체험을 못 느꼈습니다. 먹을 게 많다보니까 이것저것 쉴새없이 먹어서, 김치랑 한식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배 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가게도 기웃거리고 하다가 어디서 live music이 들리면 부리나케 그곳으로 가서 쉬다가, 무리들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면 나도 끼어들어서 몸을 흔들면서 막춤을 추곤했습니다. 김치는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크루즈를 간다면 김치를 싸가지고 가야만 될 것같아요. 나이가 평균 수명에 다다르니까 김치와 한식만 먹게 되네요. 꾸밈없고 명료하고 간단한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담없이 단숨에 읽었습니다. 아무쪼록 많이 써서 올려주세요. 수임씨의 글을 너무 좋아하는 독자가 여기 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