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토리 (734) 이수임: 기다리는 남자
창가의 선인장 (151) I'm Your Man
기다리는 남자
Sooim Lee, Red door, 2024, Digital painting
“3시에 나갈까요.”
내가 모처럼 남편과 함께 가야 할 모임이 있어서 말했다.
“뭘 그렇게 일찍 나가. 일찍 가서 길바닥에서 기다리려고. 3시 30분에 나가자고.”
남편이 대꾸했다.
“또 시작이군. ‘알았어.’라고 대답하면 간단할 일을 항상 뒤틀어 일을 어렵게 만든다니까. 그럼, 각자 나가고 싶은 시간에 나가서 모임에서 만나요.”
나는 항상 부정적으로 뒤트는 남편의 대답을 듣느니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하다.
초대받은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가자고 눈치를 준다. 모임에서 남편 옆에 있으면 빨리 가자고 쿡쿡 찌르며 재촉하기 때문에 나는 남편을 피해 다닌다.
“아니 오자마자 가? 집에 그리도 가고 싶으면 먼저 가. 나는 더 놀다 갈 거야.”
될 수 있으면 남편과 멀리 떨어져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남편은 내 주위를 뱅뱅 돌다 다가와서
“이젠 그만 가지.”
“왜 먼저 가라는데 가지 않고.”
“답답해서 그래. 그러면 문밖에서 기다릴게. 천천히 이야기하다가 나와.”
“나는 오래 있다가 갈 거야. 왜 밖에서 기다린다는 거야. 기다리지 말아. 나 좀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둬.”
친구들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조용하다 싶어서 둘러봤다. 남편이 집에 갔는지 없다. 느긋해진 나는 마음놓고 수다에 푹 빠졌다. 모임이 거의 끝나갈 즈음
“선배님 오랜만에 만났는데 헤어지기에 섭섭해요. 우리 카페 가서 더 이야기해요.”
“나야 좋지. 그렇게 하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의 큰 얼굴이 문밖에서 떡하니 버티고 나를 반긴다.
“아이 깜짝이야. 아니 집에 가지 않고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마누라 내려오길 기다렸지.”
후배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무래도 내가 집에 가지 않으면 저 사람 계속 길바닥에서 서 있을 것 같아.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남편과 집 방향으로 걸었다. 좀 미안한 감이 들었다.
“고마워 기다려줘서.”
“밤늦게 마누라 혼자 집에 오다가 무슨 일 날까 봐 기다렸지.”
“길바닥에서 기다려 주지 말고 함께 가야 할 때, 내가 나갈 시간을 말하면 그냥 ‘알았어.’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나는 남편의 부담스러운 애정 표현과 내가 말하는 것마다 부정적으로 뒤트는 일상으로 40년을 시달렸다. 한편으론 싱글의 자유로운 삶이 부럽다.
이수임/화가
https://sooimlee3.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