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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Hackman (1930-2025) 

Gene Hackman and pianist wife Betsy Arakawa found dead at home alongside one of their d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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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해크만의 남우주연상 수상작 '프렌치 커넥션'과 남우조연상 수상작 '용서받지못할 자'

 

'프렌치 커넥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포세이돈 어드벤처' '도청' '미씨시피 버닝' '용서받지 못할 자' '후지어' '수퍼맨' 등의 연기파 배우 진 해크만(Gene Hackman, 95)이 2월 26일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진 해크만은 일본계 피아니스트 부인 베치 아라카와(Betsy Arakawa, 65)씨, 그리고 저먼 셰퍼드 반려견도 숨진 상태로 함께 발견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진 해크만은 자택의 황토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으며, 욕실 바닥에서 발견된 아라카와씨 카운터엔 처방전약과 알약이 흩어져있었다. 셰퍼드는 욕실 벽장에서 발견됐다. 다른 두마리 개는 살아 있었다. <Update>

 

진 해크만은 60년 연기 생활을 통해 아카데미상 후보 5회(2회 수상), BAFTA 후보 7회(수상 2회), 골든글로브 후보 8회(수상 3회)에 올랐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액션 스릴러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에서 마약단속반 경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서부극 '용서받지못할 자(The Unforgiven, 1992)'에서 사악한 보안관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진 해크만의 연기에 대해 "할리우드의 완벽한 모든 남자(Everyman)라는 것이다. 그의 캐릭터들(죄수, 보안관, 철강 노동자, 스파이, 목사, 전쟁 영웅, 슬픔에 잠긴 홀아비, 잠수함 사령관, 농구 코치, 대통령)은 고정관념에 도전했고, 그들을 묘사한 그의 음영 처리된 묘사도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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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할자'로 오스카 조연상을 수상한 진 해크만.

 

1930년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오에서 태어난 진 해크만의 본명은 유진 알렌 해크만(Eugene Allen Hackman). 부모는 펜실베니아 독일계, 영국, 스코틀랜드계 아버지는 인쇄공, 캐나다 출신 어머니는 웨이트레스였다. 가족은 자주 이사를 다녔고, 아버지가 신문사의 인쇄소를 운영하게 됨 일리노이주 댄빌에 정착해 성장했다. 10살 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그가 13세에 부모가 이혼하게 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버지는 13살 때 유진이 거리에서 놀고 있던 중 자동차를 타고 아들에게 손을 흔들더니 떠나버렸다. 진 핵크만은 훗날 "작은 몸짓 하나가 얼마나큰 의미를 갖는지 몰랐다...아마도 그래서 내가 배우가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해크만은 16세에 가출해 나이를 속여가며 미 해병대에 입대해 중국 칭다오와 상하이, 하와이와 일본에서 복역했다. 전역 후 G.I. 빌로 일리노이대에서 언론학과 TV 제작을 공부하다가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해크만은 할리우드에서 스타덤에 오르기 전엔 무대에서 연기를 수련했다. 1956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플레이하우스에서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연극에 출연했다. 당시 해크만과 호프만은 친구들로부터 반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에 꼽혔다. 해크만과 호프만은 뉴욕으로 이주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친구인 로버트 듀발과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했다. 3인조 모두 할리우드에서 연기파로 성공하게 된다.  

 

사이클리스트였던 해크만은 2012년 82세에 플로리다 키에서 질주하다 픽업 트럭에 치었다. 해크만은 민주당 지지자로 닉슨의 '적 리스트'에 포함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공화당계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에 대해서는 호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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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Hackman and pianist wife Betsy Arakawa found dead at home alongside one of their dogs

 

2004년 은퇴 후엔 전업 작가로 변신해 역사소설 'Wake of the Perdido Star', 'Justice for None', 'Escape from Andersonville', 'Payback at Morning Peak'과 2013년엔 범죄소설 'Pursuit'을 출간했다. 

 

해크만은 1956년페이 말티즈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으며, 1986년 이혼했다. 그는 1980년대 산타페에서 몇편의 영화를 촬영한 후 이곳으로 이사했다. 1991년 아라카와와 결혼 후 산타페의 언덕에 자리한 자택에서 살아왔다. 그는 19채의 주택을 직접 설계했으며, 산타페 집은 1990년 건축잡지 'Architectural Digest'에도 소개됐다.  해크만은 1997년 산타페의 조지아오키프뮤지엄 개관식에서 연설했고, 이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오키프 다큐멘터리의 해설도 맡았다. 주민들은 이 부부가 은둔형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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